최태만 _ 미술평론가, 2012

사이 _ 가로지르기를 넘어 사이를 스며다는 문화예술 공간'

NEMO

언어는 특정 대상의 상태나 성격을 규정하면서도 내포와 외연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예컨대 영어 스퀘어를 명사로 사용할 때 그 의미는 정사각형, 광장, 제곱뿐만 아니라 고지식하여 재미없는 사람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형용사, 동사, 부사로 사용될 경우 명사의 의미를 유지하는가 하면 평행을 이루는, 동점의, 공정한, 정직한, 일치하는 등의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똑바로 펴다, 네모지게 만들다, 동점을 만들다, 심지어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형태가 아닌 공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될 때 스퀘어는 일반적으로 광장 또는 특정지역의 주소를 일컬을 때가 많다. 그래서 ‘블루 스퀘어’란 명칭에 대해 ‘푸른 광장’으로 직역할 수도 있고, 의미를 확장하여 파란색의 함의를 더욱 발전시킨 밝고 젊으며 미래지향적인 만남의 장소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 블루 스퀘어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개의 공연장 사이의 자투리공간인 너른마루에 건축된 NEMO는 공간구조상 광장이라기보다 쌈지마당에 가까운 곳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만남의 광장으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컨테이너를 쌓아 연결한 복합문화공간인 NEMO는 그 형태와 외양에서도 특이하다. 우선 장방형의 기성품을 단지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엇비슷하게 배치한 형태는 블루 스퀘어의 주건물인 뮤지컬 공연장과 콘서트 공연장의 박스 형태에 변화를 제공한다. 아울러 외벽의 색채에 있어서도 강한 주황색으로 마감함으로써 청색을 주조색으로 하는 두 건물을 시각적으로 활성화하고 있다. 이는 기능적으로도 이 복합문화공간이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을 접속하는 일종의 ‘인터페이스’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형태의 맥락에서 스퀘어나 큐브는 기능주의를 중시하는 모더니즘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건축이나 미술에서 바둑판의 눈금과도 같은 격자구조(grid)는 ‘기능이 형태를 결정한다’거나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건축설계에 적용한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란 이념에 부합하는 것이자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블루 스퀘어를 구성하는 두 건물도 외관에 있어서 기하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한 유리건물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모더니즘 건축이념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컨테이너를 사용한 NEMO와 같은 다소 도발적인 형태와 색채의 구조물이 이 주변공간을 새롭게 해석할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NEMO의 의미는 단지 형태와 색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컨테이너를 연결한 구조물이지만 가변적 공간연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르 사이를 가로지르는 실험적이고 다양한 예술행위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NEMO가 지닌 가능성이자 매력이기 때문이다.

 

동시대예술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로 장르의 경계를 해체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시각예술만 하더라도 행위, 설치, 뉴미디어아트 등은 전통적인 회화, 조각개념으로 포착할 수 없는 탈장르적 특징을 보여준다. 장르간 경계를 넘나드는 비규범적 예술은 장르의 위계를 해체할 뿐만 아니라 매체의 한계도 뛰어넘어 표현의 폭을 심화, 확대한다. 그런 점에서 NEMO는 예술작품을 안전하고 엄숙하게 모셔놓은 위생적이고 무균질의 ‘화이트 큐브(white cube)’가 아니라 새롭고 도전적인 예술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장소, 그러한 활동을 촉매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따라서 NEMO의 성격은 물리적 외관의 특이함이 아니라 공간의 역할과 기능에 의해 규정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즉 NEMO가 블루 스퀘어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예술과 상호보완적인 소규모의 시청각 예술활동이 가능한 장소로 자리매김할 때 이 콤플렉스 자체가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두 공연장 사이를 연결하는 대기공간이던 작은 부지에 들어선 NEMO가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사이 가로지르기’를 넘어서서 ‘사이로 스며들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인문사회과학과 IT산업의 협업을 통해 얻은 시너지효과를 창조적 생산으로 도출하기 위해 시도되고 있는 ‘융복합’은 비단 산업분야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이 가로지르기(cross over)는 둘 또는 복수의 본질은 유지한 채 그 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란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사이를 가로지를 뿐만 아니라 그 사이로 스며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비유컨대 이러한 물리·화학작용을 예술에서의 융복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NEMO는 재래의 장르개념으로부터도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장르를 공평하게 수평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섞고 녹이는 예술활동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침 필자는 이 공간의 설립초기부터 전문적인 시각예술가뿐만 아니라 예술의욕은 충만해 있으나 발표의 공간을 찾지 못한 실험적인 신진예술가들의 창작의지를 자극, 격려한다는 목표에 대해 논의했다고 들은 바 있으므로 머리 속에 지향점에 대한 보다 분명한 지도를 그려볼 수 있었다. 사이를 스며든다는 것은 모든 것을 녹여 다른 것을 만드는 용광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NEMO가 변증법의 지양(止揚)처럼 본질은 유지하되 기성의 규범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창출될 수 있는 의미와 가치 있는 예술행위를 촉매 하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Han_Wons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