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소개
한원석, 열정적으로 맞서온 아름답고 진실한 기록들
- 서진석 (대안공간 루프 설립자, 전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하며, 살아가는 동안 절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시간을 보내느라, 자신들에게 어쩌다 주어진 소중한 기회를 허망하게 놓쳐버리곤 한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열 번의 기회가 찾아와도 놓쳐버릴 수 있지만, 준비가 되어 있으면 어쩌다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도 놓치지 않고 이를 잡아 훌륭한 성취를 이룰 수가 있다.
한원석 작가는 개인적으로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열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 불공평한 사회, 불안정한 인간의 존재라는 약점을 딛고 서서 용감하게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창조적인 존재이다. 활력이 넘치고 열정적인 이 작가는 불공평한 사회에 맞서서 끊임없이 창조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멋지게 증명해 왔다. 언제나 준비되어있는 사람으로서 심지어는 예술계 영역뿐 아니라 그 외의 사회적 영역에서도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들을 탓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가 묵묵히 자신의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의 에너지와 창작적인 열정은 여러 가지 분야에서 빛을 발해 왔다. 내가 이 작가를 처음 만난 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역마살이 있는지 이 창작자는 젊은 시절부터 전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다양한 활동들을 해왔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중국에서 이음이라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바나나 서퍼’라는 한국과 중국 예술가들의 교류 전시회를 열면서 초대 기획자로 만나게 되었다. 그는 당시 척박한 중국의 베이징 한가운데서, 한국인으로서는 거의 최초로 갤러리를 만들었다. “나는 흙수저에 가진 것은 몸과 열정, 그리고 막무가내 정신밖에 없다. 세상에 순응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만들어가는 자로서 내가 꿈꾸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쑥스러움이나 자존심은 버려버린다. 그냥 창작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실행하고 직접 몸으로 부딪친다.” 그는 이렇게 말을 했었다. 솔직히 예술을 향한 그의 실천적 열정은 약간의 부러움과 함께 나의 미술계 행보에 적잖이 영향을 주었다고 고백해야겠다.
그 후 그는 작가, 전시 기획자, 건축가, 아트 마케팅 프로모터 등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다채로운 삶의 편력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적 성취들을 보여주었다.
한때 그는 작가로서 모두에게 버려진 폐품, 쓰레기들을 활용하여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하기도 했다. 고유의 기능을 상실한 채 버려진 물건들에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새로운 삶을 부여하고, 그 가치의 소중함을 인식할 기회를 제공해 주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가 3088개의 폐스피커들을 모아서 만든 <형연>이라는 작품은 대종상 시상식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지금은 영국에서 거주하며 국내를 오가며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해오면서 그는 거기에 그냥 안주하거나 함몰되지 않고 지속적인 사회 참여를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예술 작업과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의 의미 있는 접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자연이나 정신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갖는 과거의 철학과는 달리 나의 존재, 즉 나를 중심으로 한 삶의 철학을 제안했다. 하이데거는 현재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나를 ‘현존재(現存在)’로 칭했다. 현존재인 나는 세계 밖이 아닌 세계 안에 존재하는 ‘세계 내 존재’이다. 그는 인간은 세계와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가 없는 관계이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로의 목적을 위해 ‘도구연관(道具連關)’ 관계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이 관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현존재’의 본질로 가는 것은 죽음뿐이라고 했다. 본질이 죽음인 만큼 현실에서 실존한다는 것은 숙명적으로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을 지배하고 있는 불안감이라는 정체모를 감정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그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어떤 노력만으로써 자기의 본질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예술가는 인간 존재의 본질인 불안과 허무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창조적인 예술로 승화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 작업은 대부분 고통스럽게 패배할 수밖에 없고, 우리들은 모두 시지프스처럼 또다시 패배하면서도 다시 또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 불안을 몸으로 맞부딪치면서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맞서 싸워온 그간의 아름답고 진실한 기록들을 한원석 작가가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 기록에 미력하나마 동참할 수 있어서 나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고, 앞으로 그가 걸어 나갈 미지의 길에도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전하고 싶다.